2007년 12월 05일
공병호의 기막힌 강연회
며칠 전 공병호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그의 책을 한권 읽은 적이 있는데 '10년 후 세계'라는 책이었다. 신문지상이나 잡지등 혹은 세계는 평평하다 류의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자유주의 찬양 일변도의 조잡한 짜깁기 책에 지나지 않는다, 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에 그가 그리 탐탁치는 않았다. 그가 제시하는 세계의 상은 그가 작위적으로 갖다 붙인 미사여구를 제하고 조용히 훑다보면, 이 곳이 바로 절망의 세계구나, 싶은 구석이 많다.
어쨌든, 그가 우리학교에 왔었다. 공병호 책 한권을 공짜로 준다는 이야기에 혹해 2일 후 유기화학 시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를 차지 하고 그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사실은 그의 강연 주제가 '10년 후 한국'류의 세계 경제에 대한 거창한, 그리고 조잡한 의견 제시가 아니라 다소는 미시적인 프레임의 '대학생의 자기경영'이었기 때문인 덕도 있기는 하다. 경영이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누가 자기를 경영한다는 그 필요성을 부인하겠는가.
그의 강연은 대체로 지루했고 또 대체로 알 수 없었다. 강연 내내 그가 한 것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우라, 아주 유명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책을 열거하며 그것들을 읽으라, 하루 하루의 목표를 세우라, 따위의 것이었다. 물론, 그가 한 말들은 추천했던 쓰레기같은 몇 권의 책들만을 제하면 아주 '당연한 것'들의 범주에 속한다. 하루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중기적 목표, 장기적 목표를 세우는 따위의 것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터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이미 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런 구조적인(그리고 상투적인) 방안 제시에 있지 않고 그 구조적인 방안을 이루는 내용적인 부분에 있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는 아마도 내가 추측건데, 이 무한 경쟁의 시대, 그리고 5%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88만원 세대의 도래가 즐거울 것이다. 그 누구든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세대내 5%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막대한 부의 소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기에 그의 강연을 들으며 뇌리에 떠돈 그에 대한 인식은 다만 "저 사람은 이기주의자이지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가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다. 당장 내 주변에 같이 앉아 있는 모든 동기들, 선후배들과 '나 빼고 다 죽자'식의 경쟁을 벌이라는 것, (영어 보다는)미국어를 배우라는 것 따위. 게다가 놀라운 것은 인생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우라는 부분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인생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울 수가 있나 싶었고 그가 그리 대단한 직관과 성찰의 소유자였던가 싶어 자세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뭔 소리람. 자신의 데스티네이션은 이거란다.
"한국 최고의 강연자가 되어 막강한 부를 소유하는 것."
막강한 부가 인생의 최종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은 언젠가 그가 스스로 소유한 부에 대하여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데서 성취 불가능할 것이고 심지어는 그의 목표 자체가 수단적 가치인 '부'라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음에서 오는 그와의 소통 불가능에 대한 암시이다. 돈, 나아가서는 시장주의, 자본주의의 심화가 가져다 주는 효율성의 재고라는 측면은 분명 인간을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해주지만 그건 단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을 때의 문제이지, 결코 물신이 되어 인간을 지배할 때의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공병호의 경우는 아주, 단호히 그 물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신 숭배의 인간성 상실, 그리고 허무함은 아주 한국적인(미국 바라기인 그에게는 애석한 일이다) 유교적 전통에서 나오는 아들에 대한 대물림의 그것으로 메우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유교적 전통이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주체 사상을 낳듯, 돈과 결합하여서는 물신 숭배를 보조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공병호 같은 이의 강연이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경영의 관점, 개인적 노력에 대한, 성취에 대한 약간의 팁 제공에 불과할 때는 그리 해악이 크지 않겠구나 했던 나의 오해였다. 그의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프레임은 당연히 그의 이기적인 면모에서 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시적 관점이 결국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가혹하고도 매정한 관점을 낳은 것이지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그에게 있어 미시적 자기 경영의 달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공병호는 남은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부만을 추구하는 것이 지순한 선이라고, 그리고 그런 추악한 이기심을 시장주의라고 포장하는 재벌 논리에 포섭된 자아 없는 걸신들린 이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도 인츠닷컴이라는 회사를 망하게 한 후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서 한국에 남아 번역일이나 기업 연구소등에 친 기업적 논리나 글들을 제공해주고 돈을 얼마씩 챙기던 과거가 있는 자가 아닌가.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그 관계로 맺어진 사회에 대한 이타심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그가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관점에서 보이는 '강함'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교감할 수 없겠구나 싶은데서 오는 절망감이랄지 하는 것들, 혹은 경멸감(이게 더 컸다. 사실)들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스물몇해 평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돈에 내가 매몰되지는 않을까, 인간을 위하여, 인간에 대하여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앞에서 떠들고 있는 저 남자는 이 진지하고 내 평생의 의문에 Why not?하며 온전히 돈의 숭배, 물신 숭배의 경지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강연자로서의 니즈 창출을 위한 인위적 포지셔닝일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그는 좀 더 인간적이게 되기는 하겠지만 결코 그의 품격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요청하는 자를 강의실 앞에 세워놓고 수십명 학생들이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2시간이 지루했던 다소간의 이유들이다. 나는 공병호같이 품위 없이 돈돈 거리며 늙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을 위하여 살고 인간에 대하여 공부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죽을 것이고 흙의 일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이다.
만약 경남 통영 출신의 공병호가 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토익 시험이나 준비해 취직 잘 되기를 토요일엔 하느님께 일요일엔 부처님께 일년 두번씩은 제삿상에 비는 게 일생 일대의 과업일 것이다.
어쨌든, 그가 우리학교에 왔었다. 공병호 책 한권을 공짜로 준다는 이야기에 혹해 2일 후 유기화학 시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를 차지 하고 그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사실은 그의 강연 주제가 '10년 후 한국'류의 세계 경제에 대한 거창한, 그리고 조잡한 의견 제시가 아니라 다소는 미시적인 프레임의 '대학생의 자기경영'이었기 때문인 덕도 있기는 하다. 경영이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누가 자기를 경영한다는 그 필요성을 부인하겠는가.
그의 강연은 대체로 지루했고 또 대체로 알 수 없었다. 강연 내내 그가 한 것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우라, 아주 유명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책을 열거하며 그것들을 읽으라, 하루 하루의 목표를 세우라, 따위의 것이었다. 물론, 그가 한 말들은 추천했던 쓰레기같은 몇 권의 책들만을 제하면 아주 '당연한 것'들의 범주에 속한다. 하루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중기적 목표, 장기적 목표를 세우는 따위의 것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터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이미 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런 구조적인(그리고 상투적인) 방안 제시에 있지 않고 그 구조적인 방안을 이루는 내용적인 부분에 있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는 아마도 내가 추측건데, 이 무한 경쟁의 시대, 그리고 5%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88만원 세대의 도래가 즐거울 것이다. 그 누구든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세대내 5%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막대한 부의 소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기에 그의 강연을 들으며 뇌리에 떠돈 그에 대한 인식은 다만 "저 사람은 이기주의자이지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가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다. 당장 내 주변에 같이 앉아 있는 모든 동기들, 선후배들과 '나 빼고 다 죽자'식의 경쟁을 벌이라는 것, (영어 보다는)미국어를 배우라는 것 따위. 게다가 놀라운 것은 인생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우라는 부분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인생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세울 수가 있나 싶었고 그가 그리 대단한 직관과 성찰의 소유자였던가 싶어 자세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뭔 소리람. 자신의 데스티네이션은 이거란다.
"한국 최고의 강연자가 되어 막강한 부를 소유하는 것."
막강한 부가 인생의 최종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은 언젠가 그가 스스로 소유한 부에 대하여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데서 성취 불가능할 것이고 심지어는 그의 목표 자체가 수단적 가치인 '부'라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음에서 오는 그와의 소통 불가능에 대한 암시이다. 돈, 나아가서는 시장주의, 자본주의의 심화가 가져다 주는 효율성의 재고라는 측면은 분명 인간을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해주지만 그건 단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을 때의 문제이지, 결코 물신이 되어 인간을 지배할 때의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공병호의 경우는 아주, 단호히 그 물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신 숭배의 인간성 상실, 그리고 허무함은 아주 한국적인(미국 바라기인 그에게는 애석한 일이다) 유교적 전통에서 나오는 아들에 대한 대물림의 그것으로 메우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유교적 전통이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주체 사상을 낳듯, 돈과 결합하여서는 물신 숭배를 보조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공병호 같은 이의 강연이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경영의 관점, 개인적 노력에 대한, 성취에 대한 약간의 팁 제공에 불과할 때는 그리 해악이 크지 않겠구나 했던 나의 오해였다. 그의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프레임은 당연히 그의 이기적인 면모에서 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시적 관점이 결국 거시적인 경제에 대한 가혹하고도 매정한 관점을 낳은 것이지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그에게 있어 미시적 자기 경영의 달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공병호는 남은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부만을 추구하는 것이 지순한 선이라고, 그리고 그런 추악한 이기심을 시장주의라고 포장하는 재벌 논리에 포섭된 자아 없는 걸신들린 이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도 인츠닷컴이라는 회사를 망하게 한 후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서 한국에 남아 번역일이나 기업 연구소등에 친 기업적 논리나 글들을 제공해주고 돈을 얼마씩 챙기던 과거가 있는 자가 아닌가.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그 관계로 맺어진 사회에 대한 이타심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그가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관점에서 보이는 '강함'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교감할 수 없겠구나 싶은데서 오는 절망감이랄지 하는 것들, 혹은 경멸감(이게 더 컸다. 사실)들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스물몇해 평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돈에 내가 매몰되지는 않을까, 인간을 위하여, 인간에 대하여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앞에서 떠들고 있는 저 남자는 이 진지하고 내 평생의 의문에 Why not?하며 온전히 돈의 숭배, 물신 숭배의 경지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강연자로서의 니즈 창출을 위한 인위적 포지셔닝일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그는 좀 더 인간적이게 되기는 하겠지만 결코 그의 품격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요청하는 자를 강의실 앞에 세워놓고 수십명 학생들이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2시간이 지루했던 다소간의 이유들이다. 나는 공병호같이 품위 없이 돈돈 거리며 늙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을 위하여 살고 인간에 대하여 공부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죽을 것이고 흙의 일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이다.
만약 경남 통영 출신의 공병호가 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토익 시험이나 준비해 취직 잘 되기를 토요일엔 하느님께 일요일엔 부처님께 일년 두번씩은 제삿상에 비는 게 일생 일대의 과업일 것이다.
# by | 2007/12/05 21:28 | 생각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